video
single channel, 7’37”, color, sound
single channel, 7’37”, color, sound
《We,We,We and We》(2024, Runde Ecke, Leipzig, DE), exhibition view,© Nicolás Rupcich
이 연구 기반의 영상 작업은 1980년 후반에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평화 혁명과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한 집단적이고 비가시적인 기억을 다룹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구동독지역이었던 라이프치히에 살았던 첫 한국인 여성이 영상 속에서자신의 기억을 통해 당시 있었던 평화 혁명의 시대적 배경 및 라이프치히의 상황들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녀가 설명하는 기억들은 Archiv Bürgerbewegung Leipzig e.V.(아카이브 시민운동 라이프치히 협회)가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빙된 1980년대 다양한 기록 사진들과 결합됩니다. 녹음된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역사적 사실과 관찰한 상황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적 메세지를 전합니다. 과거 친숙했던 사진들은 그들의 추억과 상호작용하며 오늘날에 이어 그 당시의 잊혀진 시간과 기억을 보완합니다. 동시에 이 작업을 통해 공통 역사의 일부로서 기억이 어떻게 보존되고, 전달되고, 역사화되는지, 그리고 이전에 가려져있던 '우리'라는 관점은 특정 나라 속 공동의 기억 문화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합니다. 이 작업은 2024년, 35주년을 맞아 매년 라이프치히의 평화혁명을 기념하는 라이프치히 빛축제인 10월 9일날 상영되었습니다.
The research-based work engages with the collective and invisible memories of the Peaceful Revolution and the subsequent transformation. In the video, the first South Korean woman to have lived in Leipzig since the late 1980s provides a personal account of her experiences during the Peaceful Revolution, including a detailed recollection of the circumstances surrounding that pivotal moment in history. Her recollections are integrated with archival photographs from the 1980s, sourced from the Archive of the Leipzig Civic Movement (Archiv Bürgerbewegung Leipzig e.V.). Her measured, recorded voice elucidates historical situations and the emotions associated with them. The photographs interact with her memories, providing context and supplementing forgotten times and memories from then to the present. Furthermore, this project prompts the question of how memories are preserved, conveyed, and historicised as part of a shared history, and to what extent previously overlooked perspectives should become part of the culture of remembrance. This project was presented on 9 October 2024, on the occasion of the 35th anniversary of the Leipzig Festival of Lights, which annually commemorates the Peaceful Revolution in Leipzig.
Die recherchebasierte Arbeit setzt sich mit kollektiven und unsichtbaren Erinnerungen an die 1980 Leipziger Friedliche Revolution und die darauf folgende Transformation auseinander. In dem Video erzählt die erste koreanische Frau, die die Friedensrevolution erlebt hat, von ihren Erinnerungen, damaligen Umständen und dem zeitgeschichtlichen Hintergrund. Ihre Erinnerungen werden mit archivierten Fotografien der 1980er Jahre aus dem Archiv Bürgerbewegung Leipzig e.V. kombiniert. Ihre ruhige, aufgezeichnete Stimme erklärt historische Situationen und ihre damit verbundenen Gefühle. Die Fotos interagieren mit ihren Erinnerungen und ergänzen die vergessenen Zeiten und Erinnerungen von damals bis heute. Außerdem wirft diese Arbeit die Frage auf, wie Erinnerungen bewahrt, vermittelt und als Teil einer gemeinsamen Geschichte historisiert werden – und inwiefern bisher unbeachtete Perspektiven Teil der Erinnerungskultur werden sollten. Diese Arbeit wurde am 9. Oktober 2024 anlässlich des 35. Jahrestags des Leipziger Lichtfests, das jährlich die Friedliche Revolution in Leipzig feiert, präsentiert.
Steelcuts
‘내 머릿속에만 그냥 환하게 있어. 내가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은 머릿 속에만 환하게 있는 거야.’- 1’33”
‘인자, 그, 통일되기 전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더라고.’- 2’44”
‘또 나는 그, 처음보는 저기라. 동독을 위해서 뭔 일이 일어나나. 뭔 또 격한 일이 생기려나.’- 3’11”
‘나도 교회 그 따라가서 앉아있는데, 그런데 그날은 비밀 경찰들이 사복을 입고 한 600명 이상이 거기 다 들어간거야.’- 4’20”
‘"우리가 국민이다.국민이다"하면서 이렇게 막 가더라고.’- 5’40”
‘얼마나 좋냐! 나는 부럽다, 니네 나라 이렇게 강대국인 된게. 동서독이 함께하니까 얼마냐 좋냐고.’- 5’50”
‘라이프치히가 최고로 좋아. 그러고 와서보니까, 사람들도 순하고.’-6’30”
‘So bleiben die Ereignisse nur in meinem Geist zurück. Solange meine Erinnerung nicht verblasst.’- 1’41”
‘Schon vor der Wiedervereinigung begann es.’- 2’45”
‘Was passiert in Ostdeutschland? Welche dramatischen Wendungen stehen uns bevor?’- 3’11”
‘Ich setzte mich auch in der Kirche. Einmal kam während der Demonstration die Stasi in Zivil in die Kirche.’-4’20”
‘Sie marschierten und riefen: „Wir sind das Volk.”’- 5’ 40”
‘Ich beneide Deutschland, weil es dadurch stärker und gefestigter wurde.’- 5’ 50”
‘Ich erkannte, dass die Menschen hier eine sanfte Seele haben.’-6’30”
Art Statement
‘어두워진 방 안에서 이들은 마침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가 1400도의 불을 머금는 그 순간을. 순식간에 방안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내심 긴장을 담았던 굳은 표정은 온도에 맞춰 녹아 사라졌다. 모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지만 전보다 밝아진 방 안에서 그들은 이제서야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의 눈에 비친 그 자신까지도. ...‘
'... 그때는 그러한 내용에 듣고 끄덕이고 있었음에도, 불현듯 동시에 깨닫게 되는 통일과 관련된 여러 상황 속 한국과 독일의 큰 차이점들에 대해 선명하게 정리되는 감각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독일은 베를린이라는 수도도 분단되어 있었지만 한국은 하나의 수도 자체가 분단된 적이 없다는 것. 지리적으로 독일과 다르게 38선 말고는 북한도 남한도 이어질 수 있는 다른 육로가 없다는 완벽한 분리. 정치적으로 힘을 행사했던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동독 체제 지원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각 도시에서 일어나는 데모에 별다른 무력제재를 하지 않았다는 점. 독일을 두고 대치하는 주변국들의 입장에 힘(Macht)이 빠지고 관조의 모습이 생겨난 것. 동독에서 TV나 라디오를 통해 서독 미디어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런 미디어를 접하면서 자신들의 현실의 모습과 미디어 속에서 나오는 삶의 모습의 간극이 문화적이고 내적인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 서독이 아닌 동독에서 먼저 자유와 민주를 위한 운동들이 일어났다는 것 등. 어느 무엇 하나 맞아 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던, 그러한 통일의 시작이 된 전조 현상들이 한국과 북한에서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것들을 말이다. ...'
'... 그치만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조심스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 스스로 외국인으로서 이 역사에 대해 타인에게 작품으로서 말한들 이해와 공감이 되겠나 의문이 드는 점이었다. 근데 어느덧 작업은 이 조심스러운 마음에서 갈피를 찾고 있었다. 만약 그럼 그 당시에 있었던 사람 중에 나처럼 외국인이라면 어떨까? 실제로 그 상황을 겪었던 그들의 기억은 이해 받을 수 있나? 그리고 더욱 내 정체성과 가깝게, 한국인이라면.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보니 조심함은 점점 섬세함이 되고 어느 순간엔 원래 세미나를 선택하게 된 계기였던 ‘우리’는 누구인가? 누가 배제되는가? 누가 우리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
(부분만 발췌)